36일차 사순절 묵상)
성경: 마 26:14-25
제목: 예수님을 파는자
찬송: 143장
오늘 본문의 말씀은 가룟 유다의 배반과 주님과 제자들과의 최후의 만찬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예수님께서 수난의 길로 서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사람이 당할 수 있는 가장 큰 아픔 중에 하나인 배신의 고통을 당하셔야만 했습니다. 그것도 예수님께서는 3년간이나 동고동락했던 제자에게 팔리우는 고통을 직면하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게 되면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파는 장면이 나옵니다. 가룟 유다에서 있어서 가룟은 이름이 아니라 그의 출신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유다에 속한 마을입니다. 그의 출신이 이처럼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의 12제자들 중이 유다만 제외하고는 다 갈릴리 지방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유일하게 가룟 유다만이 남쪽 지방인 유다지역 출신이었는데, 이 때문인지 가룟 유다는 다른 제자들과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동기가 달랐습니다.
연구에 의하면 가룟 유다는 당시 이스라엘의 정치적 해방운동을 추구하는 젤롯당의 일원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처음부터 예수님을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민족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야로 보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다른 제자들보다 매사에 현실적인 판단이 빨랐습니다. 그래서 베다니 마리아가 값비싼 나드 향유를 주님께 부었을 때도 이 향유가 300데나리온이고 이것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 썼어야 한다고 비판한 것도 그의 성향이 어떠한 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예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왜 주님을 배반했을까? 첫 번째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그가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하늘에 속한 사람이기 보다는 정치적인 이스라엘 해방을 꿈꾸는 땅에 속한 사람이었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실 때 그의 귀는 닫혀있었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이 자기의 뜻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니 더 이상 주님의 뜻을 따를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자아가 다스려지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 삶에 이루아낼 수 없습니다. 강퍅한 마음 가운데 주의 말씀은 담기지 않습니다. 나를 내려놓고 주님의 마음을 담으려 할 때 우리는 진정으로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가룟 유다가 주님을 배반한 이유는 물질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요한복음은 가룟 유다가 배반한 이유가 돈에 대한 욕심 때문이라 말하면서 그를 도둑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돈궤를 맞았으나 돈을 꺼내 썼다 이야기합니다. 돈에 대한 욕망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디모데전서 6:6절에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다르게 말하자면 예수님과 가까워지면 더 이상 세상 것에 욕심 부리지 않고 자족하게 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했기에 결국 예수님까지 파는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욕망은 사랑의 관계를 완전히 깨뜨려버리는 죄의 도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가룟 유다는 ‘열심’이 있는 제자였지만, 그 ‘열심’만으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열심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음성을 청종하는 일입니다.
묵상포인트)
나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언제나 나를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2. 혹시 ‘나의 열심’이 주님의 길을 막고 있지 않나 생각해보고 청종의 삶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봅시다.
기도제목)
댓글0개